'꽃미남'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주변에 잘생긴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를 소비하는 이들이 꼬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되었다. 그 후 주변인들을 따라 영화와 음악을 즐기면서 미남에 대한 관심이 특수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주로 외국에서. 연예인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 없는 학창시절 친구들조차 알고보니 나한테 말을 안 했을 뿐 어릴 때부터 꽃미남 코드를 즐기고 있었다. 오직 나만 그런 세상을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꽃미남을 소유할 능력이 안 되는 나로선 하등 쓸모없는 관심거리이긴 하다만.

 

 

도리안 그레이

Dorian Gray

2009년 영국

청소년 관람불가

원작 :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주연 : (벤 반스Ben Barnes) 1981. 8. 20. 영국 185cm

 

 

삽화
연극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소설을 읽어 보았다.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면 세계적인 문호인데 꽃미남을 탐닉하는 글을 썼다는 것이 약간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행복한 왕자><거인의 정원> 같은 작품으로 어린 시절 따뜻한 동화를 쓴 작가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나의 독서는 어린 시절로 막이 내려버린 걸까. 오스카 와일드가 동화작가로 알려진 것도 아닌데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볼 생각도 안 해봤다.

 

오히려 오스카 와일드는 화려한 세계관을 가진 작가였다. 악덕한 인물을 그려내며 세간의 비판을 받고 풍기문란 죄로 영국에서 추방을 당하기까지 했다. 세태를 풍자하는 방식이 거칠었던 것 같다. 사실 그의 동화들도 인물들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는 특징이 있다. 짧은 문학인데도 인상에 콕 박히며 재미가 느껴졌던 까닭이 되지 않을까.

 

 

 

 

영화가 원작 소설을 잘 파악하고 영상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이기 때문에 소설과는 묘사하는 방식이 다르고 세부적으로 다르기도 하지만 원작을 잘 살려냈다는 것을 알겠다. 만든 이들이 오스카 와일드의 그리고 도리언 그레이의 팬일 것 같다. 팬심으로 만든 영화라고 생각된다. 너무 스릴러 장르같이 연출한 감이 있지만.

 

처음에 어린 시절의 고통을 간직한 순진하고 어리숙한 청년이었던 도리언이 차차 악덕에 물들어 가며 뿌리 깊이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마음으로는 연극배우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예쁘게 살아갔으면 하고 바랐으나 그래가지곤 극적인 이야기가 되지 못했겠지. 이게 다 그의 미모 때문이다.

 

도리언은 주변인들로 인해 자신이 꽃미남인 걸 자각하고 그것이 엄청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나이를 먹으며 미모의 꽃이 시들어버리면 그 강력한 무기는 사라지는 것이다. 도리언은 관심쟁이이고 싶었고 그 무기를 최대한 이용해 인생을 만끽하고 싶어했다. 인성이 얼굴에 드러난다고들 한다. 도리언의 그런 사고(생각)는 그의 행동과 외모에 영향을 끼치고 죄악의 길로 인도한다. 원작에서도 이렇게까지 가는 거야? 영화라서 극적인 연출을 위해 짜낸 스토리 아니야? 라는 궁금증에 소설을 읽었는데, 웬걸, 원작을 충실히 묘사한 영화였던 것이었다.

 

 

 

 

 

 

 

 

사람들 입방아가 더욱 빠르고 활발해진 현대에는 인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듯 하다. 더욱이 옛날에 비해 젊고 잘 생긴 연예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젠 인성도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아무리 잘 나가는 미남이라도 '인성거지'인 것이 들통나면 한 순간에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종하는 무리는 남아있지만 대중의 존중을 받지는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종하는 무리'가 과거 시대에는 저희들끼리 어울리고 세간의 평가를 신경쓰지 않는 사이였을 것이다.

 

 

 

 

벨아미

Bel Ami

2012년 영국, 이탈리아 102분

청소년관람불가

원작 : 모파상의 소설

주연 : 로버트 패틴슨(조르주) 1986. 5. 13. 영국 185cm

우마 서먼(마들렌)

 

 

Bel Ami
: ‘미남친구’, ‘아름다운 남자’를 뜻함
>>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나쁜 남자’로도 불린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다. 지금부터 읽을 참이다.

 

 

 

 

1890년 파리, 가난한 군인이었던 조르주는 뛰어난 외모와 매력적인 언사로 귀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도와줬더니 야망을 불태워 여자들을 이용하여 밀애를 즐기고 일자리도 얻는 처지. 가난한 농가출신인 조르주는 글쓰는 재주가 없다. 신문기사는 늘 마들렌이 쓰고 조르주는 자기가 쓴 것처럼 신문사에 갖다준다. 

 

마들렌의 남편이 죽자 마들렌에게 청혼하는 조르주. 가진거 하나 없는 무일푼 신세에 참 대범하다. 결혼 후에도 마들렌이 계속 신문기사를 작성하고 조르주는 바람이나 피우면서 더더욱 명예에 욕심부린다. 여성이 사회 진출이 가능한 시대였다면 마들렌도 자기 이름으로 기사를 내고 명성을 얻기 위해 애썼겠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고 그럴 필요로 없으니 자기 재능을 얼마든지 내어준다.

 

 

 

 

공공연히 상류사회에 진출한 잔인하고 나쁜 미남자 이야기. 도리언 그레이는 모태 부자이며 어린 나이에 재산을 물려받아 딱히 신분 상승의 욕망은 없다. 자신의 미모가 닳지 않고 사람들의 칭송이 계속되기만 원할 뿐. 하지만 조르주는 가난이 지긋지긋하고 아버지처럼 살고싶지 않아 상류사회에 진출하고자 필사적이다.


도리언 그레이처럼 마침 모태 부자이며 재산 많아도 여자는 칭송을 받을 수가 없다. 남녀 미묘한 관계적 차이는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귀부인들은 칭송받는 대신 칭송할 만한 미남자를 탐한다. 가난한 여자들은 황홀하게 쳐다만 볼 뿐인 그를 귀부인들은 즐거이 소유한다. 그렇더라도 조르주의 성격이 좀만 진솔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쪼잔한 남자라서 마음이 불편하다.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여성들이 많이 등장해서인지 19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의 화려한 패션과 인테리어 보는 맛이 있는 영화다. 조르주 때문에 혈압이 올랐다가도 집을 보면 꿈을 꾸듯 몽글몽글해진다.